[우울증 수기] 14. '나'를 찾는 여정 가운데 우울증 수기

  정신과에 가서 요즘 겪은 증상을 상담하고 왔다. 남편에게 예전에는 데려다 달라고 말도 못했는데, 이번에는 충동적으로 말했고 거절 당해서 화가 많이 났다고 얘기했다. 또 예전만큼 집중하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책은 두세 장 읽고 나면 일어나서 돌아다녀야 되고, 재미있는 TV 프로그램인데도 대체 언제 끝날까 안절부절 못하며, 심지어 제일 좋아하는 가수를 처음으로 가까이서 보게 된 공연에서도 첫 곡이 시작하자마자 도망가고 싶었다고 말했다. 매번 그렇지는 않지만 그런 일이 자주 있다고 했다.
  내 이야기를 다 들은 의사는 마음에 '환'과 '화'가 쌓였다는 말부터 했다. 그리고 치료를 시작했기 때문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몰라서 설명을 더 요구했다. 그러자 가족 이야기를 다시 꺼내면서 물었다.
  "당신은 그동안 참기만 했어요.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시달리면서 당신한테 하소연했죠? 고향이 멀어서 달리 말할 사람이 없었겠죠. 동생들보다는 당신이 낫다고 생각했을 테고요. 아버지에게 뭐라고 말해본 적이 있나요?"
  "저는 항상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해서 편지를 써요. 그래서 시아버지에게도 불만이 있을 때 편지를 쓴 일이 있어요. 아버지에게도 물론 편지를 써본 적은 있지만, 효과가 그때 뿐이어서 두어 번 써보고 그만뒀어요. 이후로는 아버지가 어머니에 대해 불만을 말해도 고개를 끄덕이며 들었고, 어머니가 아버지에 대해 하소연해도 공감하며 들었어요."
  내가 우울한 원인을 자꾸 우리 가족 이야기로 끌고 가는 방식이 지금까지 마음에 안 들었지만, 오늘만은 인정했다. 내 욕망을 억누르고 다른 사람이 힘들까봐 걱정하며 살았다는 점을 분명히 확인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그럴 때 내 속이 많이 상했는데도 티를 내지 않았다. 나도 물론 사람인데 짜증내고 화낸 적이 있지만 대체로 그랬다. 의사는 내가 남편에게 데려다 달라고 말했듯, 이제야말로 자기 욕구를 당당히 말하게 되었다고 했다. '나'를 찾아가야 하는 시기에 책 따위 지금까지 많이 읽었으니 또 인내하지 않겠다는 표현이라고 했다. '무던하고', '조용하고', '착한' 나는 누가 정했냐고 물었다. 실제로 주위 사람들이 내게 많이 하는 말이다. 그럼 '나'를 찾게 되면 다시 예전처럼 책도 술술 읽고, TV나 공연도 재미있게 볼 수 있겠냐고 내가 묻자, 그렇다고 했다. 속이 시원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이렇게 우울증 수기를 쓸 때는 한 번도 집중력을 잃은 적이 없다. '나'를 찾아가는 작업이기 때문일까?
  진료실을 나오기 전, 눈물을 많이 흘린 나에게 의사가 덧붙였다.
  "눈물을 많이 흘리세요. 비가 많이 오면 댐을 방류하듯, 당신도 방류해야 됩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슬프든 화가 나든 감동하든, 감정이 격해지기만 하면 울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부터는 제발 그 습관을 없애고 싶었다. 어쩌다 민원을 제기할 때 일이 잘 해결되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고이기 시작하는데 참 곤란하다. '다 큰 어른이 울어서 해결하려고 들다니 세상에!'라고 생각할까봐 얼른 눈물을 감추려고 해보지만 이미 늦었을 때가 많다. 부끄럽지만 술 마시고 취해도 운다. 누군가는 했던 말을 반복하거나 흥에 겨워 노래를 부르지만 나는 주위 사람들을 당황시켜가며 운다. 괜히 의미를 부여하자면 의사 말처럼 마음 속에 쌓인 화가 많아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상담사가 많이 화내고 때려 부수고 울라고 했던 말과 비슷하게, 정신과 의사도 많이 울라고 했다. 그렇게 마음 속에 있는 화를 다 비우고 진짜 '나'를 찾아야겠지. 마음 가는 대로, 하고 싶은 대로 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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