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수기] 51. 아침약을 뺀 뒤 경과 우울증 수기

  원래 아침약을 빼기 전까지는 자기 직전에 저녁약을 먹었었다. 그런데 밤에 너무 기분이 들뜨고 흥분이 되길래 요즘에는 저녁식사를 하고 얼마 뒤에 바로 먹기 시작했다. 아침약(환인탄산리튬정)이 기분을 안정시켜주는 효과가 있었는데 아무래도 양이 줄어드니까 지속효과가 떨어진 모양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약을 줄여도 이제 우울은 오지 않고 반대로 너무 신이 난다. 소리를 크게 지르고 싶어지거나 쓸데없는 수다를 너무너무 떨고 싶다. 전과 달리 내가 이상함을 빨리 눈치 채고 자제하기도 한다. 저녁약을 조금 더 빨리 당겨 먹음으로써 이런 증상은 나아졌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항상 남은 아침약을 비상용으로 가지고 다닌다.
  최근에는 친구들을 무척 자주 만나고 친정에도 시댁에도 전보다 많이 갔다. 남편이 말하기를 내가 친구를 만나고 오면 평소와 다르게 표정도 밝고 기분이 정말 좋아 보인다고 한다. 그래서 남편 마음도 편하다고, 더 많이 만나라고 했다. 시댁도 더 편해지기는 했는데 아직 시아버지만큼은 어렵다. 그 사실을 새삼 깨달은 계기가 있다. 시어머니가 고향에 내려가 계시는 동안 시아버지와 시동생만 있는 시댁에 가기로 며칠 전에 남편과 약속을 했었다. 그런데 당일 아침에 정말 무서운 꿈을 선명하게 꾸었다. 얼굴은 없었지만 남편이라고 꿈속에서 인식하고 있던 남자가, 길고 커다란 칼로 나를 죽여서 온통 피범벅이 된 꿈이었다. 나중에 남편한테는 그냥 모르는 남자가 나를 죽였다고만 이야기했다. 그 꿈을 꾸고 나서 너무 무서워 남편을 꼭 붙잡고 한참 동안 못 일어났다. 몽롱하고 제정신이 아니었는데, 결국 다시 푹 자고 진정을 했다. 못 일어나고 다시 잠든 이유는 잠을 매일 새벽 2~3시에 자고 오전 10시 쯤 일어나는 생활을 하고 있으니 잠이 부족했던 탓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생리 중이었기 때문에 호르몬 영향도 있었겠고, 꿈 속에서 본 피도 그와 관련이 있으리라 짐작한다. 그래도 은연중에 불안을 느꼈기에 그런 꿈을 꾸지는 않았나 혼자 생각했다. 이제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놀랐다. 어디에서든 위협요소는 갑작스레 나타나곤 하니까 늘 조심해 가면서 연습해야겠다.
  남편이 없을 때는 끼니를 거르거나 대충 때우는데, 요새 들어 남편이 점심 시간마다 메시지를 보낸다. 밥 꼭 챙겨먹으라고. 처음에는 별로 감흥이 없었는데 점점 그 마음이 고마워진다. 덕분에 나를 조금은 더 소중히 여기게 된다. 오늘은 점심을 제대로 챙겨 먹었다. 저녁도 혼자 먹어야 하지만 즉석식품 말고 간단하게라도 요리를 하려고 한다. 나는 이 정도만 해도 많이 발전했다고 위로해 본다.

[우울증 수기] 50. 아침약 빼다 우울증 수기

  요 몇 주 간 아침 약을 깜빡하고 안 먹는 일이 많았다. 그러면 오후 늦게나 되서야 허겁지겁 먹었는데, 어느 날은 저녁 늦게까지도 안 먹은 줄을 몰라서 그냥 에라 모르겠다 하고 아예 먹지 않았다. 사실은 기분이 좋은 상태로 꽤 길게 유지가 되고 있어서 믿는 구석이 있기는 했다. 죽음에 대한 생각도 더는 들지 않고 감정이 가라앉지도 않았다. 비록 잠과 식사가 불규칙하기는 하지만 운동을 꾸준히 하면서 몸이 전보다 건강해짐을 느꼈다. 남편이나 친구들과 대화도 많아졌고 그를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했다.
  그래서 3일 동안 아침 약을 안 먹어보니 그 어느 때보다 정신이 맑고 또렷하여 무슨 일을 해도 잘 되는 기분이 들었다. 내 주관적인 느낌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마침 병원에 갈 때가 돼서 이참에 아침 약을 빼달라고 말해보았다. 의사도 흔쾌히 그러자고 했다. 앞으로 상태를 지켜보고 다시 조정해가겠지만 일단 기쁘다.


[우울증 수기] 49. 공감과 배려의 비극 우울증 수기

  친구들과 만든 모임에서 한 친구가 떨어져나갔다. 그 친구가 사소한 잘못과 실수를 반복하는 동안 다른 친구들은 참고 또 참다가 폭발했다. 서로 감정을 그때그때 표현하지 못하다가 생긴 비극이다. 나는 두 쪽 다 이해가 간다. 잘못한 친구가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는데도, 이 친구의 피치 못할 사정에 대해 내가 설명해주었는데도 용서하지 않은 친구들에게 내심 서운하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그 친구와 지낸 시간이 더 길고 정도 더 많이 들었으니 나만 이해하는 부분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두 쪽 다 공감이 간다. 앞으로도 두 쪽 다 친하게 지내며 만날 것이다.
  내게 이런 경험이 처음은 아니다. 대학교 재학 시절에도 똑같은 경험을 했다. 그 후 지금까지 양쪽 친구를 모두 꾸준히 만나고 연락하며 친하게 지낸다. 두 번씩이나 같은 경험을 하고 나서 고민하다가 깨달은 사실이 있다. 나는 모두를 이해하려고, 상처주지 않으려고 너무 애쓴다.
  예를 들어 친구는 모르는데 나는 잘 아는 상식이 있다면 나는 같이 모르는 척 할 때가 많다. 그런 경우 다른 친구는 망설이지 않고 지적한다. 함께 식사를 해야 하면 상대방 취향에 거의 맞춘다. 내 의견을 물어볼 때는 최대한 기분이 상하지 않게 말하는 법을 고민하거나 듣기 좋은 말을 해준다. 때로는 상대가 고민이나 울분을 털어놓으면, 내 생각과 다르더라도 일단 고개를 끄덕이며 끝까지 들어준다. 심지어는 맞장구도 친다. 상처입은 마음을 그렇게라도 위로하고 싶어서 말이다. TV나 영화를 볼 때 등장인물에 폭 빠져 눈물을 펑펑 흘리고는 한다. 내 앞에서 누가 눈물을 흘리면 함께 운다. 당시 같이 있던 사람 중에 나만큼 우는 사람은 아직 본 적이 없다.
  심리상담을 받으러 다니던 시절에 상담사가 했던 질문이 있다. 내가 왜 그렇게 잘하고 싶어하는지 이유를 찾다가, 부모님이 강요하지는 않았냐고 물었다. 나는 전혀 아니라고 답했다. 그때는 결국 답을 찾지 못하고 상담도 그만두었는데 이번 일로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다가 깨달았다. 나는 내가 잘하면 부모님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행복했다. 내가 잘하면 선생님이 칭찬하는 모습을 보고 안도했다. 하지만 성인이 되고 나서는 아무도 잘한다고 칭찬을 해주지 않는다. 못하면 비난을 견뎌야 한다. 그게 정상이다. 나는 그것을 버티지 못했다. 첫 직장에서는 좋은 상사와 선배를 만나 칭찬과 격려를 아낌없이 받았기에 버텼지만, 그 다음 단계부터는 진짜 성인으로 거듭나야만 했었다. 이직을 하고 결혼도 했다. 다른 사람의 평가에 민감했던 나는, 이게 칭찬이지 욕인지 알기 어려운, 빙빙 돌리는 말들을 듣고 혼란스러웠다. 결국 모두 나를 비난한다고 비관하기에 이르렀다. 얼마 전까지도 내가 도전하고자 하는 일을 반대하는 사람이 생기자 나는 끝까지 밀고 나가지 못했다. 미련하게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쪽보다 타인의 평가 쪽에 더 큰 가치를 부여했음이 분명하다.
  내가 다른 사람을 더 깊이 이해하고 배려한다는 자랑이 아니다. 그렇게 했던 이유는 바로 내가 비난받고 싶지 않아서였다. 못난 자존심이었다. 그렇게까지 해서 내가 행복하다고 믿고 싶었음을, 그 환상이 깨지자 매일 죽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면서 살게 됐음을 이제야 깨달아 고백한다.


[우울증 수기] 48. 먹기 싫다 우울증 수기

  요즘엔 하루에 한 끼만 제대로 먹어도 다행이다. 하지만 입맛이 없어서 그렇지는 않다. 친정이나 시댁에서 거의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만 얹을 때, 친구나 남편이랑 외식을 할 때는 곧잘 먹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혼자 있는 시간에는 도저히 아무것도 먹기가 싫다. 어머니가 바리바리 싸준 각종 반찬과 즉석밥이 집에 있는데 안 먹힌다. 배는 고프고 쓰려오니 겨우 씨리얼만 한두 줌 우유랑 함께 먹고는 한다.
  오늘은 남편이 회사 일로 늦어서 혼자 운동을 하러 나왔는데 저녁도 혼자 먹어야 한다. 집에 돌아가면 먹을 거리가 있어도 안 먹을 테니 외식을 해보려고 상가를 몇 분동안 걸어다녔다. 간판도 보고 음식 냄새도 맡아보지만 내가 뭘 먹고 싶은지 도무지 모르겠다. 평소 좋아하던 음식인데도 딱히 먹고 싶지가 않아 이상하다.  몇 바퀴를 돌고 나서야 겨우 한 곳을 골라 주문을 하니 먹히긴 한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혼자 있기 싫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원래는 혼자 집에 있기 좋아하고 혼자 밥 먹기도 아무렇지 않았던 사람인데 참 이상하게도 혼자 밥 먹기가 싫다. 오늘은 남편과 밥을 같이 먹지 못해서 특히 슬프다. 눈물이 나려는데 몇 번 참았다. 꼭 그 이유만이 아니라도 대부분 슬픈 상태다.
  내일도 모레도 친구를 만나기로 했다. 그러면 밥도 먹고 속내도 털어놓고 우울한 생각을 조금이라도 덜 하겠지. 그리고 항상 그랬듯 이 또한 지나가겠지.


[우울증 수기] 47. 극복한 줄 알았던 위협요소 우울증 수기

  이번 명절은 어떻게 잘 지나가나 했다. 전날에 백부댁에 모여서 전을 부쳤다. 누구도 전과 같이 특별히 잔소리를 하지 않았다. 올림픽이 한창이라 잔소리할 거리가 줄어 다행이었다. 게다가 나만 일을 많이 하지도 않았고 어른들도 대부분 두 팔 걷어부치고 열심이었다. 허리수술을 앞두고 있는 시아버지마저 만류도 마다하고 일을 했다. 분위기 좋게 일찍 마무리하고 집에 가는 길에도 고생했다고 어른들도 남편도 토닥여주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 문제는 밤에 일어났다.
  그렇게 일을 하고 피곤한데도, 커피 한 잔도 마시지 않았는데도, 잠이 안 왔다. 그동안 낮밤이 바뀌었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옆에서 쿨쿨 잘 자는 남편을 보는데 눈물이 나왔다. 미워서가 아니라 미안함과 나 자신에 대한 한심함이 섞여 나온 눈물이었다. 그 순간 나는 너무 죽고 싶었는데 막상 죽을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어두운 생각을 떨쳐보려고 또 스마트폰을 손에 쥐었다. 잠시나마 안정은 되었지만 다시 잠을 청하려고 노력하는 순간 더 심하게 울기 시작했다.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더는 이유도 모른 채 밤새 울었다.
  그러다 한 시간 정도 잤을까. 남편이 아침 일찍 차례 지내러 가기 위해 슬그머니 일어나는 작은 소리에 잠에서 깼다. 남편에게 어제 울어서 잠을 한 시간 밖에 못 잤다고 말하는 순간 울음소리가 크게 터져나왔다. 나 오늘 안 가면 안 되느냐고 남편 손을 붙잡고 꺼이꺼이 울었다. 평소에 장난처럼 나 설날에 안 간다고 말하면 그러라고 곧잘 대답하던 남편인데 이번에는 아니었다. 당황해서 차마 나를 달래지도 못하고 우두커니 서있었다. 전날 그렇게 분위기가 좋았으니 이해가 안 갔을 터다. 누워서 눈만 뜨고 바로 몇 분을 그렇게 울었는데, 이 정도로 감정이 심하게 흔들린 상태에서 평소에 그래왔듯 일단 약을 한 알 삼키려고 일어났다. 약을 먹어서가 아니라 그냥 일어난 그 자체로도 정신이 조금 드는 기분이었다. 무슨 생각이었는지 나도 모르겠지만 갑자기 남편에게 가자고 말했고 서둘러 옷만 갈아입고 집을 나섰다.
  차 안에서도 계속 눈물을 흘리다가 겨우 진정하고 백부댁에 도착하였다. 퉁퉁 부은 눈을 아무도 못 알아보게 마스크를 쓰고 모자를 푹 눌러쓰고 들어갔다. 다른 친척들은 알았는지 몰랐는지 그냥 넘어갔는데 시어머니는 나를 따로 방에 데리고 들어갔다. 어제 있었던 일을 말하고 나도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시어머니는 내가 상처를 깊게 입었나보다라며 앞으로 어떤 행사든 명절이든 다 오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시아버지 생신이더라도 안 와도 되니까 어서 회복하라고 했다. 약 끊고 임신하면 좋겠다고 말이다. 그런 말을 들으니 안심이 되어서 오히려 더 눈물이 났다. 그래도 차례도 지내고 세배도 하고 나름대로 무사히 설날을 마무리했다. 그렇게 눈이 부었는데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을 법도 하지만, 친척들은 아무 소리 하지 않고 지나갔다. 시어머니가 뭔가 둘러댔거나 사실대로 말해주었을 지도 모른다.
  내가 아프게 된 계기가 된 사건이 바로 첫 명절 때 일어났는데, 아무래도 아직까지 나를 위협하는 요소인 모양이다. 지난 추석 때는 그래서 가지 않았지만, 다른 시댁 행사에서는 아무렇지도 않아서 잘 극복했다고 생각했다. 그래봤자 일 년에 두 번이니 다시 부딪쳐보자고 생각했는데 아직 일렀나보다. 또 명절 때 이런 일이 생겼다. 당분간 시어머니 말대로 명절에 가지 않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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