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수기] 36. 호르몬에 살고 죽고 우울증 수기

  마지막 글을 쓴 뒤로 계속 좋은 상태를 유지했다. 수기 따위는 쓸 생각도 나지 않을 정도로 괜찮았다. 그런데 어떤 나쁜 일이 일어나거나 약을 거르지 않았는데도 급격히 불안하고 짜증이 늘어났다. 식욕도 함께 급증한 사실과 날짜를 따져보니 분명 월경전증후군이다.
  월경전증후군은 우울증에 걸리기 전부터 있었던 증상이라서 당황스럽지는 않다. 하지만 지금까지 살면서 너무 불편하고 힘들었을 뿐 아니라 앞으로 폐경이 오기 전까지는 겪어야 하기 때문에 치료가 가능하다면 빨리 낫고 싶다. 증세가 가벼울 때는 견딜만 했지만 때에 따라 우울증 못지 않게 심각한 날도 있었다. 치료하려면 정신과에 가야 하는지 산부인과에 가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이제야 좀 살 만할 정도로 좋아졌다 싶었는데, 내 노력과는 상관 없이 호르몬이 내 몸과 정신을 좌지우지함을 느낄 때면 내가 한없이 작아보인다. 하지만 사람의 정신력이나 의지는 자연에 비해 얼마나 대단할 수 있을까? 아무리 큰 의지를 지닌 사람이라도 늙어 죽고 병들어 죽는 일은 웬만해서 막지 못한다. 나라고, 우울증이라고 다르지 않겠지. 그렇게 되새겨본다.


[우울증 수기] 35. 약을 빼먹지 않은 중간 결과 우울증 수기

  한 2주 전인가 EBS에서 우울증과 조울증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해서 우연히 보게 되었다. 우울증은 생각보다 적은 비중으로 다루었고 조울증이나 공황장애를 겪고 있는 사람들의 증상이 더 많이 나왔다. 그런데도 어쩌면 나와 그렇게 비슷한지 크게 공감하면서 봤다. 우울증이 호전된 사례를 보여줄 때는 다른 조건보다 환자의 의지를 더 강조했던 점이 조금 아쉽기는 했지만, 약이 내 몸에 어떻게 작용하며 왜 필요한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한 가지 종류의 약만 먹고 있지는 않지만, 약이 작용하는 원리는 이렇다고 한다. 정상인의 뇌보다 우울증 환자의 뇌에서는 기분을 좋아지게 하는 호르몬이 빨리 사라지기 때문에, 그 호르몬이 좀 더 오래 머물도록 돕는다. 최소 6개월은 먹어야 재발을 막을 수 있고, 재발할 경우 1년, 또 다시 재발하면 2년을 먹어야 한다. 그래도 재발하면 평생 먹게 되는 일도 있다. 조울증 환자의 경우 약을 꾸준히 먹을 확률이 우울증 환자에 비해 많이 낮다고 한다. 나는 초기에 약을 의사와 상의 없이 끊었던 실수 이후, 다행스럽게도 저녁에 먹는 주요 약 만큼은 꾸준히 빠뜨리지 않고 먹어왔다. 깜빡해서 먹는 시간이 들쭉날쭉할지언정 안 먹지는 않았다. 그 덕분인지 요새 상태가 매우 좋다. 감정 기복도 거의 없고 울적하거나 울지도, 화가 나지도 않는다. 너무 들뜨지도 슬프지도 않아서 딱 예전 나의 모습과 같다고 느낀다.
  무엇보다 최근 가장 큰 변화는 잦은 외출과 사교활동이다. 친구가 부르면 무조건 나가고 햇빛을 쬐며 거리를 걸었다. 많이 웃고 떠들었다. 심지어 모르는 사람들과도 거리낌 없이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새로 생긴 꿈을 좇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이제 다니던 직장은 그만두고 진짜 내 꿈을 이루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정말 우울했을 때는 그냥 다 때려치우고 집에만 있고 싶어서 남편에게 전업주부로 살면 어떠냐고 상담하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은 전혀 그럴 생각이 없다. 원하는 일을 하며,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때와 장소에서 내 능력을 발휘하며 살고 싶다. 많이 호전되었다는 증거 같다.
  정신과 의사에게도 지금 썼듯 좋아졌다고 설명했다. 아직은 때가 아닌지 약을 더 줄이자거나 끊자는 말은 없었다. 똑같은 약을 계속 복용하고 있다. 실은 지난 번에 갔을 때는 약을 다시 늘려줄까 물었는데 내가 꼭 늘려야 하냐고 너무 실망하니까 일단 줄인 약으로 먹어보자고 한 뒤에 이렇게 호전되었다. 온전히 내 설명에 따라 증상을 확인하고 약을 조절해야 하니 상담이 참 중요하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하게 되었다. 얼마 후면 나도 6개월 정도 약을 먹은 셈이 되는데 그때가 되면 약을 끊을 수 있을까? 내 단기목표는 약 끊기다.



[우울증 수기] 34.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우울증 수기

  남편, 시부모님과 나 사이에 갈등이 생기게 된 이유는 우리 모두가 우울증에 대해 잘 몰랐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이제야 든다. 갈등의 첫 시작은 갑작스러운 나의 짜증이었다. 사실은 추석 때 친척들 드릴 선물도 사놓고 시부모님 드릴 용돈도 뽑아서 예쁜 봉투에 담아 준비해놓기까지 했다. 그런데 뜬금없이 가기 전 날 밤에 다시 친척들에 대한 안 좋은 기억들에 사로잡혀서, 남편에게 가기 싫다고 짜증을 내고 화를 냈다. 같이 가기로 한 줄로 철썩같이 믿었던 남편은 대체 무엇이 문제인지 이해하기 어려웠고, 몇 달 동안 나를 배려하느라 참았던 스트레스가 그때 폭발했다. 그 증상이 불안증이었다는 사실을 그때는 나조차도 알지 못했다. 남편도 그걸 알았더라면 싸우지는 않았을 텐데. 우리는 싸웠고, 시부모님에게 감정을 표현하면서는 충분히 공감받고 있지 못한다는 생각에 감정이 격앙되어 충돌로 이어졌다.
  이 일이 있은 후 서로 따로따로 본가에 가서 추석을 보내고 온 우리 부부는 다시 만나서 또 싸우게 되었다. 나는 내가 상처받은 마음을 공감받고 싶어했고 남편은 시부모님의 생각을 나에게 이해시키려 했다. 결론적으로 내가 말한 감정을 시부모님은 전혀 받아들이지 못하는 상태이니 내가 한 말을 사과하라는 말이었다. 내가 어렵게 어렵게 말한 감정들이 모두 거짓말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받아들였고, 그 사실이 너무 억울했다. 생각을 하고 또 하는 동안 어느새 또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내가 죽으면 내 말이 다 진실임을 알아줄까?' 내가 너무 펑펑 울고 있으니까 남편이 다가와서 이유를 물었다. 나 때문에 남편이 정말 우울증에 걸렸다면 어쩌나 싶은 마음에 이번에는 너무 힘든 감정을 말하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괜찮다며 다독이는 모습에 마음이 약해져서 생각을 털어놓았다. 그러자 왜 그런 바보같은 생각을 하나며, 내가 죽는다고 해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보다 내가 얼마나 속이 상한지 먼저 봐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기 때문에 남편의 말을 받아들이기까지 시간은 걸렸지만, 정말 그렇다. 내가 또 비약적으로 생각한 모양이다.
  수많은 생각과 고민, 걱정을 머릿속에서 떠나보내지 못한 채 시부모님을 뵈러 갔다. 걱정과 달리 나를 먼저 안아주시면서 토닥여주시는 모습에 마음이 사르르 녹았다. 내가 처음부터 바랐던 것이 바로 이것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날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공감하지 못했기에 갈등만 생기고 말았다. 나도 죄송했던 부분에 대해 사과를 드리고 감사를 표현했다. 지금까지 그때그때 내 감정을 표현해왔더라면 어느 정도 알고는 있었을 텐데 한 번도 말 못하다가 갑자기 폭발하듯 표출해버리니 시부모님도 화가 나셨나보다. 몇 시간 동안 이어진 대화에서, 친척들이 나를 싫어해서 그렇게 말하고 행동하지는 않았다는 이야기, 뒤에서는 예쁘고 착하다고 얼마나 칭찬했는지를 내내 들으면서 믿기 어려웠다. 살아온 환경과 지역이 다름에 따라 갈등이 생긴다는 사실, 그리고 나의 비약적 사고가 작용했음을 나도 인정하게 되었다. 이로써 내 불안의 원인 중 하나가 조금이나마 덜어졌는지도 모르겠다. 돌아오는 길에는 내가 처음으로 시아버지 시어머니를 안아드렸다. 많이 걱정했었는데 지난 번처럼 흥분하지 않고 대화로 해결하게 되어 정말 다행이다.
  명절을 둘러싸고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이 나를 돌아보게 한다. 나 때문에 우울증에 걸린지도 모를 남편, 그리고 나의 비약적 사고가 나와 가족에게 미친 영향. 이런 사건들을 겪으면 겪을수록 내 병에 대해 더 잘 알고 가족들이나 친구들과 공유해야겠다는 생각이 확고해진다. 병 때문임을 알았더라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들도 있기 때문이다. 가족들의 경우 내가 불안 증상이 있을 때는 별 말 없이 공감하면서 지나간 뒤에, 상태가 괜찮을 때 대화를 시도했을지 모른다. 다음에 시댁 친척들이 모이는 행사에 가기 전에 또 그런 불안증이 온다면 남편에게 솔직하게 말하고 약이라도 먹어서 진정을 하는 방법도 있겠다. 그리고 감정을 표현하는 일이 중요하긴 하지만 이제 호전이 되고 있으니 수준을 높여야만 한다. 세상에서 나만 아프고 상처받을 리 없다. 다른 사람들이 상처받지 않는 방법을 연습해야 한다. 내 부정적 감정들을 날 것 그대로 여과 없이 들어주어왔던 남편을 위해서다. 

[우울증 수기] 33. 고난이도 감정 표출 우울증 수기

  추석이다. 인생에서 최악의 명절이 되었다. 결혼 전에는 명절이 즐겁기만 했다. 차례를 지내지 않는 집이라, 쉬면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가족들이랑 오손도손 이야기를 나누면 금세 시간이 지나가곤 했다. 결혼한 지 이제 1년 조금 더 지났을 뿐인데도 결혼 후에는 명절이 너무 싫어지고 말았다. 시댁 친척들과의 잦은 만남이 불편하다는 마음은 누구라도 그렇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해보려고 할 때마다 면박을 주거나 짖궂게 대하는 등 내가 한 노력에 비해 인정받지 못한다고 느껴 힘들었던 날들이 많다. 특히 명절 때마다 어른들의 생각 차이로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듯 나와 남편만 사이에서 상처를 많이 받았다. 우울증이라는 사실을 밝힌 뒤로는 시부모님이 우울증에 대한 무지와 권위주의적 태도로 나에게 지우기 힘든 상처를 주기도 했다. 지금까지 수기에 써왔던 일들이다. 그렇게 힘들어 했으면서도 이에 대해 지금까지 어른들과 제대로 대화해본 일이 없었음을 깨달았다. 항상 어른 앞에서는 속이 문드러져도 '네'만 해왔다.
  지금은 상담을 받으러 가지 않은지 꽤 되었지만 내게 가장 큰 도움이 되었던 말은 힘들고 슬프면 감정을 다 표출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환자인데 누굴 걱정하냐는 말과 함께. 예전에는 그 정도도 혼자서 못했기에 상담사에게 훈련을 받고 숙제도 했다. 그래도 나 하고 싶은 말 하다가 남까지 상처 주면 안 되니까 나 전달법으로 말하는 연습을 했다. 그 후부터는 남편과 직장은 물론, 어디서든 하고 싶은 말을 조금이라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번 추석 전전날, 여느 날처럼 남편에게 짜증 섞인 하소연을 했다. 시댁 친척들 만나기가 싫고 시부모님 이해가 안 된다는 내용이었다. 이런 얘기를 하고 있자니 남편이 그럼 가지 말라고 하면서도 화를 냈다. 내가 그래도 당신 가족인데 이런 얘기 하면 싫지 않냐고 몇 번 물었을 때, 자기도 친척들과 부모님이 미우니까 다 얘기하라고 했던 남편이 말이다. 그리고 자신도 너무 힘들고 죽고 싶은 생각이 자꾸 든다며 우울증인 모양이라고 했다. 내가 남편을 감정 쓰레기통으로 여겼지 않나 반성하게 되었다. 나 때문에 우울증에 걸리지 않았는지 걱정이 되고 자책감이 든다. 남편은 항상 괜찮다고만 하는데 사실은 안 괜찮아서, 한 순간 크게 쓰러지고 마는 사람임을 간과하고 있었다. 남편은 큰아버지댁에 추석 전날과 당일 모두 가지 말라고 하면서도, 자신은 용기가 안 나니 나보고 직접 시부모님에게 말하라고 했다. 결혼 후 첫 다툼이 그렇게 끝났다.
  펑펑 울어서 다음날 아침에 눈이 많이 부었다. 추석 전날 큰아버지댁에 음식을 하러 가기 전에 시부모님을 먼저 만나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나는 오늘, 내일 안 가도 되는지 물었고 내가 아프기 때문에 한두 해는 그렇게 하라고 허락을 받았다. 그런데 왜 가기가 싫은 거냐고 질문을 받았다. 상담사와 연습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그동안 친척들과 겪었던 일, 그에 대한 나의 감정, 상처를 털어놓았다. 이 일들이 내 우울증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밝혔다. 그러자 시부모님은 피식피식 웃으며 그 분들이 얼마나 좋은 분들인지 아냐며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람이 모두 내 마음같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나라면 '그랬니? 나는 그런 줄은 몰랐어. 너는 그렇게 느꼈구나.'정도로 말하고 끝냈을 것이다. 어차피 한두 해 정도는 안 가는 쪽으로 생각을 해두었으니 말이다. 시부모님이 내가 가장 아프고 힘들었을 때 남편도 없는 자리에서 의지와 자세를 운운했던 날의 이야기도 했지만, 그런 정도의 조언을 그렇게 받아들인다면 상태가 심각하다는 말만 했다. 도움이 되는 조언도 있었지만 상처를 주는 말도 분명 있었다. 말을 뱉는 사람은 좋은 말만 기억하는 모양이다. 역시 상처되는 말은 당한 사람만 기억하는 법이다.
  이번에는 그러면 대체 명절에 어떻게 하고 싶냐고 또 물으시길래 다른 친척들 말고 시부모님과 우리 가족끼리만 오붓하게 보내고 싶다고 했다. 어디까지나 희망사항임은 나도 잘 안다. 아까부터 웃기만 하고 심각하게 받아들여주지 않기에, 그 정도로 상처가 크다는 표현을 하고 싶었다. 제사를 그럼 우리 집에서 지낼까 물으시길래 그래도 좋다고 했다. 일하기 싫어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연히 말도 안 되는 소리로 일축되고, 점점 언성이 높아지며 시아버지에게는 형과 동생인데 어떻게 안 보고 사냐고 화를 냈다. 내가 남편 체면을 차려줘야 한다고 했다. 다 서로 만나지 말라는 말이 아닌데 이상했다. 친척들로 인해 내가 이렇게 힘든데도, 그들을 보러 가는데 내가 굳이 있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오로지 남편과 시부모님의 체면를 차려주기 위한 도구로 생각하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체면은 스스로 차려야지 내가 차려주는 게 아니라고 답하자 더 화를 내며 이혼하든 갈라서든 알아서 하라는 말까지 시어머니 입에서 나왔다. 나와 남편 둘의 문제가 아닌 어른들 체면 문제로 보이는데 어떻게 그런 말까지 하는지 놀랐다. 계속 가만히 있던 남편은 그제서야 시어머니를 제지시켰다.
  죄송하다는 말로 시부모님을 배웅하고 집으로 다시 들어오는 길에 남편의 손을 뿌리치고 방에 들어가 꺼이꺼이 눈물을 토해내듯 울었다. 시부모님과 대화할 때에도 울었지만 혼자 남고 나니 더 서러워 눈물이 한동안 멈추지를 않았다. 죽고 싶은 생각도 몇 번씩 들었는데 남편이 아른거리기도 하고 이런 일로 죽기엔 내가 아깝다는 생각도 들었다. 꾸준한 약물치료 덕분인지 자살사고가 심각하게 들지 않고 금세 생각을 바꾸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를 아프게 했던 사람들에게 내 감정을 솔직하게 이야기했다는 사실이 처음에는 후회되고 마음이 아팠지만, 점차 그래도 이 정도면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줄곧 속마음과 다르게 '네'만 반복하는 관계로 남았다면 언젠가 더 큰 불화가 생길지 모른다.
  추석 당일에는 남편과 내가 각자 다른 곳에서 추석을 보내게 되었다. 3일째 눈이 퉁퉁 부어있어서 기록을 경신 중인데 집에 혼자 누워있자니 또 울게 된다. 불행 중 다행은 얼마 전부터 무기력증이 전혀 나타나지 않아서 삼시세끼 잘 먹고 낮밤도 바뀌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불안 증세는 가끔 나타나지만 심하지 않다. 그래서 호전되고 있다고 생각했더니 난항을 겪게 되었다. 자꾸만 나도 모르게 주문처럼 되뇌인다. '괜찮다.'


[우울증 수기] 32. 나만의 불안 증상 해소법 우울증 수기

  갑자기 심장이 뛰고 눈물이 날듯 말듯 불안한 때가 있다. 특별한 이유는 없는데 말이다. 바로 지금 그렇다. 저녁 약을 깜빡하고 늦게 먹어서일까 추측만 할 뿐 원인은 잘 모르겠다. 언제 내가 이렇게 되는지 아직도 파악하지 못했다. 미리 대비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뒤늦게 저녁 약을 먹었지만 금방 효과가 나타나지는 않는다. 그럴 경우 나는 일단 스마트폰을 집어든다. 뭐라도 내 주의를 돌릴만한 일을 찾는다. 이렇게 수기를 쓰기도 하고 게임을 하기도 한다. 그러는 사이에 약 효과도 나타나고, 다른 나쁜 생각을 할 여지를 주지 않아서 좋다. 단, 이렇게 스마트폰을 쥐고서 동이 틀 때까지 놓지 않은 날도 많다. 그래서 혹시 단순히 스마트폰 중독인가 걱정도 했지만, 점차 스마트폰으로 불안을 해소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짧아지기는 한다.
  처음부터 이런 식으로 불안 증상을 해소하지는 못했고, 조금 호전된 뒤부터 가능하게 되었다. 초기에는 자살 충동이 일고 펑펑 울 만큼 정도가 심했기 때문에 비상용으로 가지고 있는 약을 하나 더 먹어서 해결했다. 한 10분 정도면 효과가 있었다. 최근에는 불안하더라도 약을 추가로 더 먹지 않고 내 방식으로 해소하고 있다. 언젠가 약을 끊을 날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내 방법은 잠 자는 시간이 엉망이 되어버려서 바람직한 방법이 아닐지도 모른다. 이 방법 말고도 즉각적인 효과가 있으면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는다면, 불안 증상 해소법으로 시도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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